본문 바로가기

선비의 묵상

나는 어디쯤 인가?

728x90
반응형
SMALL

 

삶은 고단하다. 

우리는 누구든 고난을 받는다.

순탄한 삶을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보냈다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고난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그 안에 깊은 은혜가 있음을 알 때가 온다.

지나고 나면 알 수 있는 그 것. 

다만 시간이 많이 흘러 그것을 깨닫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난의 중심에 있을 때는 그것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감사할 수도 없다.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한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 받으려고 믿는다.

돈 좀 벌어보고 싶어 믿는다.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고 믿는다. 

천국 가려고 믿는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믿는다.

 

등등의 수많은 이유가 있다.

 

 

믿음을 가지는 것에 잘못 오해하는 것들이다. 

"믿으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 거냐."

이런 폭언 수준으로 따지는 분들도 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있는가?"

"나는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다."

"믿고 싶지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한다.

 

 

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과연 믿음은 그런 걸까?"

 

"복 받으면 아무런 질병도 없고, 돈 잘 벌고,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권력을 잡고, 승리하고, 높은 위치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걸까?"

 

"복의 개념은 뭘까?"

 

"그 복이라는 게 보이는 것으로 다 이뤄지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중 답을 찾은 사람도 있고, 아직도 답을 몰라 방황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답을 찾아 헤메이고 있었다.

왜 나는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지?

교회 분들이 나와 우리 가정을 보면서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 안될까?

무슨 죄가 있을까?

아직도 시간이 안되었나?

 

나도 궁금하다.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는 것을 알겠는데, 아직도 그 깊은 의중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순종하는 것이 뭔지를 알지만, 그대로 되지는 않는 그 무엇.

지금의 나의 상황이고 환경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있다.

하루하루 말씀 속에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감사하다.

 

 

 

어제는 로마서 5장 말씀 설교를 듣게 되었다.
평소 읽어봤고, 들어봤던 본문이 나에게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그냥 눈으로 보는대로, 그냥 귀로 들리는데로 이해했던 나의 무지함을 회개했다.

 

로마서 5장 1~4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첫 째 충격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는 말씀이다.

바울은 환난이 와도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  

 

그 안에 깊은 뜻을 알아가면 즐거워할 수 있겠으나 나의 수준이 거기까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환난 중에 있더라도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겐 환난과 가난과 고난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처럼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는 작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수준을 바라본다.

나의 작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반면 내가 가야할 방향을 깨닫는다.

 

 

두 번째는 환난이 끝나면 은혜가 바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환난 이후에는 인내를 원하시는 시즌이 있다는 말이다.

 

환난 끝이니 이제 복 받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이건 초신자의 신앙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그건 속담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환난 후에는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동안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환난이 끝나면 복 주신다 했으니 나는 돈도 많이 벌 것이고, 유명해질 것이고, 교회에서 더 많은 헌신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환난 이후는 인내가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시간, 즉 인고의 시간을 지내야 한다.

순금이 단련되기까지의 과정이 하나로 끝난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불순물을 정제하는 시간이 오래도록 걸린다.

그것이 인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원하시는 구나.'

그것을 깨달았다.

 

 

1학년이 환난이었다면 

인내는 2학년이 된다.

 

아. 

1학년을 마치면 학교 졸업이 아니고 2학년으로 올라가는 거였지~!

 

이제 알았다.

인내의 터널을 지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 번째 충격은 인내 이후의 3학년이 또 있다는 것이다. 

3학년인 연단이 기다리고 있다.

 

테스트라고 표현하는 것도 일리 있는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의 그 시험이 기억난다.

 

그릇을 재보는 것, 이 그릇이 쓸만한 그릇인가를 두드려보는 것이다.

깨졌나 아닌가를 판단해보는 시간이 연단의 시간이다.

 

그 3학년을 마치고 나서야 소망을 이룬다는 것.

그 말씀이 로마서 5장 1~4절의 말씀이다. 

 

 

오늘 드디어 제대로 이해했다.

그동안의 잘 못 이해했던 오해를 풀었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아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줄을 알았다.

 

하나님은 하나의 작품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구나.

스케치하시고 그 초안을 다시 정리하시고 색을 입히시고 최종 터치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그렇게 진지하게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가시는 분이신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쉽게 공짜로 주시지는 않으신다.

 

복음이 공짜라고 생각한다고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복음의 값은 예수님의 생명값이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 

그것이 진리이고 복음이다. 

 

예수님의 생명값을 값 없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에게 바로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전달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이고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다. 

 

 

로마서 5장을 보면서 내 위치가 어디쯤일까를 생각해봤다.

 

큰 환난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 겪는 것만큼 겪은 인생을 살고 있다. 

지하에서 20년 넘게 살았고, 5식구가 단칸방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그럼에도 밥 굶지 않을 만큼 먹고 자랐다.

부모님의 헌신으로 이렇게 자란 것에 감사하다.

 

소소한 어려움을 큰 환난으로 포장할 기술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 나는 환난을 소소하게 지나간 것 같다.
내 그릇이 거기까지여서일 거다. 

지금은 인내와 연단의 중간 어디쯤 인 것 같다.

아직 나는 완성본도 아니고 하나님의 시험도 합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그 방향에 내가 서겠구나의 정도는 알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재보실 때 내가 그 마음에 합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그런 칭찬을 받고 싶다.

 

나의 상태 나의 위치는 인내와 연단의 사이라고 본다.

앞으로 소망을 향해 나아갈 길을 멈추지는 않겠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다만 내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그 길 가운데 함께 하실 것을 알고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고, 단단해지고 있다.

목숨 다해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에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반응형
LIST

'선비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  (0) 2022.12.29
간절함  (0) 2022.12.15
통찰력  (0) 2022.11.18
답을 찾다  (3) 2022.11.07
하나님의 타이밍 - 오스 힐먼  (0) 202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