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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글짓기

체력 vs 체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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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이런 질문을 해 봤다.

 나는 체력이 좋은가?

 나는 체격이 좋은가?

 

 사실을 굳이 말한다면, 둘다 아니다가 정답이다.

 

 연약한 몸둥이와 저질 체력으로 매일매일을 근근히 버티는 인생이니 뭐 더 설명할 가치가 있을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과연 체력과 체격은 뭔가? 차이점이 뭘까?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체력 : [명사] 육체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몸의 힘. 또는 질병이나 추위 따위에 대한 몸의 저항 능력.

 

 이 체력이란 것은 눈으로 봐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격렬한 운동이나 힘든 활동을 끝까지 해 봐야 나타나는 능력이다. 버티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냥 봐서 대략적으로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게 확실한 정답을 담보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이 좋으면 체력이 좋겠다는 추측을 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체격은 좀 다른 의미다.

 체격 : 근육, 골격, 영양 상태 따위로 나타나는 몸 전체의 외관적 형상.

 

 이것은 외관으로 드러나는 형상이다.

 

 딱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몸짱, 참몸, 식스팩, 근육형 등등의 표현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런 형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동의어로 생각할 때가 많다.

 

 한 가지가 좋으면 다른 한가지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많은 우를 범하는 것은 체격이 좋은 사람은 거의 다 체력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외향만 보고 다른 것도 그럴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단어가 동일한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 체격이 좋지 않을 수 있고, 체격이 좋은 사람이 체력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연계성이 있어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올라가긴 한다.

 

 몸짱이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픈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란 말을 한다. 

 

 체력을 체크할 수 있는 실전 게임을 뛰어보던지, 아니면 격렬한 운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모습을 보면 금새 발견할 수 있다.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세계적인 운동선수이지만 다른 것엔 젬병인 경우를 많이 봤다. 부상 때문에 지금은 잘 걷지도 못하는 분들도 봤다. 

 

 이 실전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체력이 어떤지 판단하는 것은 외향만을 보고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할 우려가 있다.


 이런 두 가지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신앙에 대해서도 질문해 보게 되었다. 

 

 나는 믿음이 좋은가?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단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봉사 열심히 하고, 교회 활동에 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좋은 신앙을 가진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란 뜻일까?
 직분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뛰어난 사람인가?

 

 이것은 외향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봐서 알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신앙의 기준이고 믿음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그런 분들은 상위 1%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반문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외향적인 믿음의 바리새인들을 미워하시고 그들을 혐오하셨다.

  왜 그럴까?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모습 다가 아니다.

 

 체격이 좋다는 것이 외모적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보면 성실하게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바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자신의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보며 그들이 틀렸다고 지적한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은 체격처럼 보여지는 것에 더 가꾸고 투자하고 열심을 내고 헌신하고 노력한다.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보여지지 않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내면을 가꾸는 것, 실질적인 체력을 키우는 것에는 소홀하고 외면하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크리스찬의 모습이다.

 나도 이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체력을 뜻하는 내면의 삶을 변화시키고 단련시켜야 하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다. 

 그 아는 만큼 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의 결과물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지 못함을 신경쓰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보여지기 위해 체격을 키우는 것처럼 보여지기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런 사람들이 허다하다. 

 관상용 근육이라는 말도 이런 뜻이 아닐까. 
 보여지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에 우리 시대가 다 빠져있다. 
 식스팩은 만들고 바디프로필을 찍어야만 뭔가를 내세울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다들 빠져있다.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부터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체격을 키우는 것에 더 집중했던 삶을 정리해야겠다.

 내면의 중심 즉, 보여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만이 아시는 진정한 믿음을 키우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

 

 우리는 너무 외향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것 같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에 휘둘리지 말고 내면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나 뿐 아니라 내 주변 모든 사람이 영적인 체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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