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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 6 장 1~8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오늘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시내 산 가시떨기 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경 속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직접 받는다면 좋겠습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말하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유다의 왕으로 52년을 통치했던 사람입니다. 비록 중도에 문둥병에 걸렸지만 매우 유능했고 강력했던 왕이었습니다.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반석 위에 숨기시고 그의 눈을 가려 정면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다만 지나가실 때 그 뒷모습만 보았다고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 많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스랍들 곧 천사들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수록 우리의 죄가 더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세상에 비교할 수 없는 구별을 말합니다. 흠이 없으신 분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이 세계를 이끌어가시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더러움이 더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정결한 하나님 앞에 이사야가 말합니다.
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자 자신의 입술을 가리며 내가 죽게 되었다고 탄식을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더러움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는 표현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벧전5:8)
베드로도 거룩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보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꼭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이 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이 점점 박해를 받고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 이유가 뭘까요? 교회가 가져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 사라진 것입니다. 즉 거룩함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게 된 이사야에게 스랍들(천사들)이 제단에 있던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댑니다. 이사야의 입술을 뜨거운 불로 지진 것입니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고 선언합니다. 부정했던 입술을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만지심으로 인해 정결해지고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결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만나주시지 않으면 바뀐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욕하지 않게 되고 더 착하고 깨끗하고 성실하게 살게 됩니다.
저희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고양이를 키우면서 아내와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는 대소변을 스스로 가리고 먹을 양만 먹고 사냥 놀이만 조금 해주면 귀찮게 하지도 않고,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거 보니 정말 키우는 거 껌이다. 이렇게 고양이 키우는 게 쉽구나 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로이입니다.
몇 개월 전에 두 번째 아이가 길가에서 죽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첫 번째 아이가 키우기 쉬웠으니까 얘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지 아세요? 이 둘째 아이는 맨날 오줌과 똥을 아무데나 쌉니다. 오줌 밭에서 뒹굴고 놀아요. 고양이는 깨끗한 동물이다는 말을 이해ㅏㄹ 수 없어졌습니다. 하루만 목욕을 안해도 찌른냄새가 집에 가득합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침대에 올라와서 제 옆에서 오줌을 쌉니다. 오마이갓…
그 아이는 자신의 소변에 뒹굴고 아무렇지 않게 똥을 묻히고 다녀요. 아내가 죽을 지경입니다. 제가 볼 때 얘는 고양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죄를 짓고 회개하는데, 다시 죄의 자리에서 뒹굴고 사는구나. 내가 오줌밭에 뒹구는 고양이랑 뭐가 다른가.
여러분은 자신있습니까?
잘못을 알려주고 지적하면 뉘우치고 바로 수정해서 바르게 살고 있습니까? 깨끗하게 죄 얺짓고 살고 있습니까?
매일 죄를 회개할 때마다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입장에서 우리가 얼마나 한심할지 알겠더라구요.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의 죄를 사해주시는 방법으로 입술을 정결하게 해 주셨다는 겁니다. 숯불을 통해 죄를 태우고 깨끗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하십니다.
8절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의 일을 행할 사역자가 필요한데 누구를 보낼까 하는 탄식입니다. 누구를 보내야 하나?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곳에 갈까? 내 일을 할 사람을 어떻게 찾을까?
이 소리를 듣는 이사야의 마음에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자신이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떻 일을 해야할 때 드는 부담감은 거의 대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하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만 같고, 내가 가야 할 것만 같습니까? 그러면 기도해 보십시오. 계속 부담감이 있으면 그 일을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련회를 생각할 때 가야하는지 부담감이 생긴다. 그러면 100% 가야하는 겁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결단합니다.
이사야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뛰어드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게도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완성은 결단입니다. 마음을 먹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시간이 다 가고 기회도 지나가고 맙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결단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 언젠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세간에 알려진 문장.
한국에서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의역된 문장으로 일단은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2]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
얼마나 허망한 삶을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데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번주 목요일에 킹스캠프 여름수련회를 떠납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곤지암 실촌수양관에서 아름다운 찬양과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금 마음에 부담감이 있습니까? 그러면 가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뭐 토요일에 갈비집을 간다는 그런 것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환영하겠습니다. 비용을 부담해야하는 부장님께서는 마음의 부담이 되시겠지만,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는 부장님의 믿음을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의 결정과 순종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는데 시작이 될 것입니다.
더러운 세상에 죄로 물든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를 물을 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겠다고 서원하는 이사야의 모습을 우리가 배워야 하고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쓸만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나 한사람의 헌신으로 민족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헌신을 순종함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절대 남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내 믿음입니다.
우리 엄마가 기도 많이하면 내가 천국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엄마만 천국 가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면 내가 천국을 수 있는가?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 안의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만 천국갑니다. 나도 아무 노력없이 따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가면 자기의 믿음도 큰 줄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큰 것이지 자신의 믿음이 큰게 아닙니다. 믿음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나도 믿음이 좋은 줄 안다는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차은우 친구라고 내가 차은우처럼 잘 생긴게 아니에요. 그냥 차은우 친구일 뿐입니다.
신앙은 철저히 나의 믿음으로 고백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했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는 그리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가 직접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직접 먹어본 것이 내 경험이고, 내가 직접 가본 곳이 내 경험이고, 내가 만나본 것이 내 경험이다. 자꾸 남의 이야기 들은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합니다.
오늘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처럼 나를 써 달라고 내가 직접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많은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킹스캠프에서 직접 만날 것이고, 놀라운 경험을 할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만났다고 한다고 가만히 있던 나도 예수님을 만났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직접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고백해서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을 믿으시고 기대하면서 기도하세요. 나를 만나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나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이사야 선지자는 고단한 길을 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그 길에서 흔들림 없이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수련회에서 그 길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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