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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묵상

아~ 미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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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장 11~23절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오늘 성경을 읽으며 깨닫게 된 부분이 있어 글을 남긴다.

평소 이 내용을 보면서 미갈의 어리석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수많은 설교를 통해서도 미갈의 어리석은 모습과 다윗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분에 대한 대조 형식의 이야기로 들었었다.

오늘도 그 연장선이긴 하지만, 미갈의 모습을 통해 느끼게 된 바가 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성령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에 맞춰 예배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이끄시는대로 인도하시는대로 자신의 영혼을 맡기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손을 들고 방언을 말하고 방언 찬양을 하기도 한다.

이 모습 때문에 "신사도운동이네 이상한 성령이 임했네" 하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폄하하고 이상한 집단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같은 크리스천들도 그런 다는 게 참 안타깝다.

부정적인 시각의 사람들을 보며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로는 이성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방언은 커녕 눈 감고 손을 들고 예배하는 것조차도 이상한 모습으로 생각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그런 모습까지 멈춰세우려고 한다.

말씀으로 가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설득하고 성령은 성경 시대에 끝났다고 말하며 논리를 앞세워 설명하려고 한다. 자신들만 진리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모습의 예배는 인정하지도 세워주지도 않는다. '다 잘못되었다' 성경 말씀의 진리라는 팩트 위에 더 이상의 성령은 없다는 말로 정리하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령님이 일하실 수 없다. 그들에게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고 마귀가 떠나가지 않는다. 믿음과는 거리가 먼 굳건한 신념을 가진 자로 변해간 자신의 모습이 절대 선이라며 타협을 불허한다. 이스라엘 시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이랬을 것 같다.

성경을 가지고 타협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삼위일체 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부정하는 그들의 삶에 안타까운 마음이 커지기만 한다.

오늘 본문은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다윗의 성으로 금의환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온 민족이 환호하며 열광하며 예배하는 그 자리에서 다윗은 기뻐서 춤추며 여호와를 찬양한다. 품행이 방정맞아 보였을 정도로 자신의 이성을 높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맞긴 춤추는 다윗을 본 미갈의 마음이 16절에 기록되어 있다.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서 뛰놀며 춤추는데, 사울의 딸 미갈은 창으로 내다보기만 했다.

예배하는 그 자리에서 함께 예배해야 하는 왕의 아내가 그냥 구경했다는 말이다.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데, 마중은 커녕 창 밖으로 무관심하게 바라봤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은총을 깨닫고 소리높여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자신의 남편이고 나라의 왕이 기뻐하는데 미갈은 턱을 궤고 창 밖을 바라보며 방정맞아 보이는 다윗을 업신여겼다.

다윗이 돌아왔다. 자기의 가족을 마음껏 축복하기 위해 기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미갈이 다윗을 맞으며 한 말이다. 20절 후반이다.

20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왕이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오늘 방정맞기가 그지 없더라구요? 사람들 앞에서 몸까지 드러내셨네요."

미갈이 다윗에게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참 어이없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던 사람이 예배하는 사람들을 볼 때 '미쳤구나'하는 그 마음이 다윗을 향해 마음껏 비아냥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 미갈...

다윗이 이야기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다. 네가 뭐라 해도 나는 여호와 앞에서 계속해서 뛰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낮아져 천하게 보이더라도 너한테는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으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그 후 미갈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다윗이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비아냥 거리는 자들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예배는 구경하는 게 아니다.

예배는 내가 그 안에 기뻐 참여하고 함께 빠져들어야 하는 거룩한 자리다.

그 자리에 우리는 미갈의 모습을 하며 구경할 때가 많다.

오늘 뭐하나 보자.

니들이 뭘 준비했나 볼께.

잘하는 지 체크해 볼테다.

설교는 어떻게 하는지 볼란다.

찬양은 잘하나?

기도하는 사람은 준비가 되었나?

저 사람은 왜 오버하면서 손을 들고 찬양하냐?

눈물은 왜 흘려?

다 오버하는 사람들 뿐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무도 다윗처럼 기뻐하면서 뛰놀며 춤추는 사람은 없다.

그냥 드려야하는 예배에 내가 참석해 준게 대단한 것이라 착각한다.

아무도 이런 착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미쳐보일 수 있다.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도 다윗처럼 성령님께 온전히 빠져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를 것을 다짐한다.

미갈의 삶의 마무리가 안됐다.

그녀도 한때는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울왕에게 죽을 뻔한 다윗을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지금은 남편 된 다윗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랑의 마음이 식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마음이 식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것이다.

예배의 감격이 없는가?

큰일 날 일이다.

형식적인 예배에 그냥그냥 참석하는가?

다시 뜨거워지도록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해 깊이 빠져야 한다.

예배에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해야 할 제대로 된 예배자의 모습이다.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춤추고 뛰놀며 찬양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아니 그렇게 예배해야 한다. 기뻐뛰며 감사함으로 찬양하길 바란다. 수련회 때만 그럴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래야 한다.

그 온전한 예배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워주시는 근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우리도 그런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잊지 말자.

주님 제게 주신 그 자리를 감사함으로 지켜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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