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설교
부활하신 예수님
둘리오
2024. 4. 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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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10절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오늘은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거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겠지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오늘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가 부활주일 예배입니다.
오늘이 그 의미있는 날입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가 크네… 못생겼네... 뚱뚱하네… 무식하네… 등등의 말이 아닙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 다시 태어나야 돼. 전 이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런 말 사용을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의 속 뜻은 이렇겠죠. 힘든 세상에 바꿀 수 있는게 없다.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자조섞인 의미라고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사용하는 말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저는 싫어합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삽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알려드릴테니 그런 말들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거듭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또 다른 말로 한다면 부활한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 3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 이거 밑지고 파는 거예요.
- 이익이 없이 판다는 말의 99%는 거짓말입니다. -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해.
- 나 시집 안 갈거야.
- 요즘 시대엔 안 맞을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이 하는 3대 거짓말도 있더라구요.
- 금방 도착해. 조금만 기다려.
-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지겨운 시간입니다. -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야.
-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는 겁니다. - 금방 갚아 줄게.
- 말하고도 그렇게 못하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말하는 거에요.
이렇게 거짓말이 넘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으로 우리를 속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거짓말 안하고 살아간다는 게 힘들다는 거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고 많이 한다고 하지만, 죽음을 가지고 거짓말 할 수는 있을까요?
없습니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버리시는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진리를 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놀라운 사건이 우리의 삶에 흔적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장사되어 무덤에 있었지만, 3일만에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고난주간 동안 맛있는 거 못 먹고, 놀고 싶은 거 참았던 여러분들에게 해방같은 소식이겠네요.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참된 축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만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런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분문은 안식 후 첫날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가는 여인들을 이야기합니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안식일이 지난 이른 아침 무덤을 찾아간 것입니다.
가면서 걱정하는 거에요. 무덤에 가서 돌문을 누가 옮겨줄 수 있을까? 우리들로는 안될텐데…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걱정하면서도 발걸음을 무덤으로 옮기고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면서 무덤에 도착하니 문이 열려 있고 예수님은 안계십니다.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근심과 염려하던 여인들에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말합니다.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천사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에 절망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말씀하신 부활의 약속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여인들은 그제서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라는 주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기억으로 인해 여인들의 절망과 염려가 바뀌었습니다.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여인들은 걱정하면서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되고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절망과 염려,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새로운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습니다. 오늘은 그런 예배로 인해 예수님의 부활이 저절로 믿어지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갈 때도 그런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믿어지고 예배하는 사람인가. 밖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남들 하니까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찬양하라니까 하는 그런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녀로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은 잘 사는 것 같아요. 공부하고 학원가고 성적관리하고 우리가 예배하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면서 발전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조바심이 날 때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공부한다고 성적이 갑자기 쑥쑥 올라가지는 않을거에요. 갑자기 이뻐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게속해서 예배하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면 변화가 생길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에수님의 무덤에 간 여인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만, 염려가 있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두려움이 있을 때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갔던 여인들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이었고 자신들이 그 소식의 첫번째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끝이라는 절망감 때문에 좌절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는 기쁨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하루하루 믿는 자로 사는 것과 예배하는 것에 힘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첫번째로 듣게 된 여인들처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소망과 기쁨으로 살게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부활의 능력을 우리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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